이제는 설날이라도 별다른 설 감흥이 없다. 옛날에는 설전날 회사에서 제공하는 귀성버스를 타고 밤새워 달려 새벽녘에 부산역에 도착해서 다시 열차를 타고 부모님 계시는 삼랑진에 가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큰애는 걸려서 가고 둘째는 집사람이 업고, 나는 회사에서 주던 선물 박스를 손에 들고 갔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중고로 장만한 똥차를 타고 열몇 시간 걸려 가던 때도 있었다. 퍼세식이던 화장실을 밤에는 집사람부터 애들까지 무서워 이용하지 못해 다들 데리고 삼랑진 역 화장실까지 원정도 다녔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명절제사는 형님이 모시기로 하고 형제들은 기제사만 참석하기로 해서 이제는 명절이라도 아무른 행사가 없어진 지 십여 년 넘게 흘렀다.
이제는 명절 아침에는 아들네가 와서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딸네가와서 식사를 하는 것이 주요 행사다. 오늘도 아침에 아들네가 와서 같이 아침을 먹고 세배를 받았다. 손자가 며칠 후에 초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고 3월에 중학생이 된다. 어제부터 손자 본다는 생각에 설렐 만큼 손자가 이쁘다. 소위 노래가사 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손자다. 집사람도 며칠 전 은행에 가서 중학교 입학 축하 및 세뱃돈을 겸해 새 돈을 장만했으며 어제는 정성스럽게 할머니의 사랑과 당부를 넣은 편지를 써서 오늘 주었다. 저녁에는 딸네가 와서 저녁을 먹고 외손자 세배도 받고 조금 전 돌아갔다. 외손자도 며칠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면 모두가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 집사람이 매사 모든 가사를 잘 꾸려가고 수고를 아끼지 않음에 감사하고 아들, 딸모두 사회 활동을 잘하고 부모와 선한 관계를 가짐에 감사하며 손자들 모두 건강하고 밝게 커가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단지 우리 집에서는 내 건강이 제일 문제인 것 같다.
작년에 다친 고관절로 인해 아직도 걷는데 조금의 장애가 있다. 동네 가까운 곳은 그냥 다니지만 조금 멀리 나가려면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그리고 걷는 속도도 느리고 오래 걷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이제는 걷는것외의 운동은 생각지도 못하게 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등산회, 탁구회등의 모임은 이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 올해 초부터 임플란트 보식과 이빨 치료를 시작으로 기관지염으로 한 달여간 고생을 했으며 갑자기 복통과 소화 불량이 발생해 며칠 전까지 음식도 먹기도 힘들었다. 먹는 양도 훨씬 줄었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면류도 이제는 거슬리게 되었다. 눈이 침침해 예약한 안과에 갔더니 백내장이라 수술을 해야 한다 해서 당황했다. 조금 나빠졌으니 앞으로 주의하라 정도를 기대를 했는데 수술을 하라 하니 당황해서 일단 3개월 뒤로 미뤄놓고 왔다. 갑자기 모든 곳이 아프게 되었으며 이렇게 되는 것이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인가 하고 아직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이는 형편에 이르렀다.
그저께부터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 우선은 아픈 곳은 일단 없어졌고 먹는 것도 80% 정도 올라온 것 같다. 아직 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지금 가면 너무 억울한 것 같다. 손자들 커 가는 것도 더 보고 할아버지로서 집안의 중심 역할도 더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매사 조심할 계획이다. 갑진년 설날에 내가 가족들 한데 짐이 되지 않고 힘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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