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손자 졸업식

매봉70 2024. 2. 14. 22:11

오늘 손자 초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당초 집사람이 우리는 가지 말자고  했는데 학교도 집에서 가깝고 며느리가 꼭 와야 한 데서 다녀왔다. 아들네가 맞벌이라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거의 10년간  손자 뒷바라지에 집사람의 노고가 아주 컸었으므로 당연히 가는 게 사리에 맞는 것 같다. 새벽 아들내외가 출근하기 전에 집사람이 올라가 손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뒷바라지를 했었다. 유치원이나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이올린, 수영, 수학이나 영어등 매일 학원을 운전해서 데리고 다녔으며 저녁까지 먹이고 난 후에야 아들네에 보냈었다. 그만치 집사람이 손자 양육에 절대적으로 수고를 하였다. 손자는 영어 유치원부터 사립초등학교까지 그리고 비싼 학원까지 만만찮은 교육비를 아들네가 마련한 것도 또한 여간 한 노력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손자는 좋은 부모, 조부모 덕으로 좋은 교육과 보살핌으로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환경에서 커나가는 것도 복이고  운이라 생각한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손자는 잘커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며 심성이 아주 착하다. 반장, 회장도 자주 했으며 바이올린 경연대회에도 나가 금상을 탄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영어회화도 곧잘 해  할아버지도 기 끔씩 묻곤 했던 적도 있었다. 이번 졸업식에서도 가장 우수한 상을 받았다. 대견하다. 졸업식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오는데 손자는 섭섭해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물론 졸업식이라 헤어짐에 섭섭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보통애들과는 달리 마음이 여린 편이다. 중학교는 집 근처 일반 중학교에 진학을 하는데 사립학교 출신이 일반 중학교에 가서는 적응을 잘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나의 경우 시골 국민학교 졸업 후 부산으로 진학해 열차통학을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적응을 해 나간 경험으로 볼 때 손자도 중학교에 진학해서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글을 적다 보니 내 중학교 시절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입학해서 며칠 후 부산진역에 내려 길을 건너 학교에 가는데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순경이  경찰서로 가자하는 바람에 울었던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교통신호 같은 것은 구경도 못해봤고 순경아저씨도 농담조로 경찰서로 가자 했는데  몸보다 큰 가방을 들고 길에서 울었던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반에서 키가 제일작아 교복도 커고 모자도 커고 가방도 컸었다. 어쨌든 커가는 과정에서는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것 아니겠는가.

 

예순다섯, 은퇴할 때에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다. 이제는 일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다. 커가는 손자를 보면 흐뭇하지만 늙어가는 한 편의 허전함은 숨길수가 없다. 몸도 점점 약해지는 걸 느끼다 보니 허전함이 더하다. 인연에 의해 가합 된 상태임을 더 새기고 인연에 의해 변해감을 당연하게 여기고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 가족들과의 선한 인연에 감사하고 계속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우리 손자가 잘 커나가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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